"남편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물질!"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4월 위기설은 넘겼지만 걱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북한이 갈수록 핵무기 개발에 바짝 다가서는 것 같아서다. 북한의 핵무기는 핵재앙을 전쟁도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만에 하나 전쟁이 벌어져 핵폭탄이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원로 문학평론가 김우창(81)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9)의 글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알렉시예비치를 포함해 세계 유명작가가 대거 참여하는 서울국제문학포럼(23~25일)에 대한 최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알렉시예비치는 1986년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참혹상을 20년 현장 취재 끝에 생생하게 글로 옮겨 노벨상을 받았다(『체르노빌의 목소리』). 포럼을 앞두고 미리 보낸 '미래에 관한 회상'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도 그 내용을 실감 나게 전한다. 이 글을 김 교수가 읽어보라고 한 것이다.
A4 용지 9쪽 분량의 글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이후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운을 뗀다. 묵시록적인 세상, 그런 면에서 섬뜩한 미래의 시간을 살게 됐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공포영화에도 이런 것은 없었어요"라고 절규한다. 무장 군인들이 자동소총을 들고 삼엄하게 경계를 펴지만 정작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방사능은 무색, 무취에 형태조차 없지만 은밀하면서도 확실하게,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무수한 동식물의 생명을 앗아간다. 심지어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마저도 영원히 세상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땅 속에 땅을 파묻어야 했다는 얘기다.
발제문은 물론 책에서도 소개한 소방대원의 아내 류드밀라 이그나텐코는 체르노빌 현장에서 방사능에 오염돼 죽어가는 남편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의료진의 지시를 거부하고 병실에 숨어든다. 사랑하는 신혼의 남편과 키스하고 간호를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뱃속의 5개월 된 딸을 잃고 자신의 건강도 망친다. 몇 년 후 다른 남성을 만나 아들을 얻지만 역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남편을 면회하려는 이그나텐코에게 병원 의료진은 경고한다.
"명심하세요. 남편한테 가까이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입 맞추어도 안 됩니다! 쓰다듬는 것도 안 됩니다! 이제 이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물질이에요!"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핵재앙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던 사랑과 죽음의 개념조차 바뀌어버렸다고 쓴다. 죽음을 부른 사랑, 죽음의 키스였던 셈이다.
김우창 교수는 "모든 것이 오락이나 선전, 디자인이나 문화산업이 되는 세상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데, 알렉시예비치의 글은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언어로 인간 체험을 전하는 문학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여전히 문학은 심오한 주제를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어 "북핵 문제는 절대로 폭력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전쟁과 핵이 결합하면 정말 살 수 없는 세상이 된다"고 했다. 그런 이유에서 알렉시예비치의 글을 읽어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문학포럼 이외에 다양한 일반 대상 행사를 소화한다. 19일 오후 4시 홍대 상상마당에서 '독자와의 만남', 22일 오후 2시 서울대 러시아연구소에서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와의 대화', 24일 오후 2시 서강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초청 토론에 참가한다. 서울국제문학포럼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주최한다. 02-721-3202~3, 061-900-2100, 2200.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다음은 스베틀라나 발제문 전문
미래에 관한 회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우리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문화, 바리케이드 문화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두렵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고, 세상 어딘가에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태양빛이 눈부신 날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번개나 태풍, 지진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된 누군가가 땅 위에 누워있을 것입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시대의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 속에서 전쟁과 혁명이 아니라 체르노빌이 20세기의 주요사건이 되었습니다.
체르노빌 이후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미래를 살고 있다고, 아포칼립스 최초의 굉음이 이미 들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주의 시각이 아닌, 역사를 통해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이곳, 지구에서는 우리가 통치자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우리에게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작가의 눈으로
체르노빌의 원자로가 폭발했습니다.... 몇 주 후 저는 ‘체르노빌지대’로 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와 가까이 자리한 지역들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4월, 풍배도(風配圖)는 벨라루스 쪽을 향해 있었고, 벨라루스는 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하게 체르노빌 사태의 여파를 겪어야 했습니다. 발전소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무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완전군장을 한 채 최신 자동소총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헬리콥터나 장갑수송차가 아니라 그들이 들고 있던 자동소총이었습니다. 총을 들고 체르노빌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거기서 누구를 쏘고 싶었던 것일까요? 누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 했던 것일까요? 물리의 법칙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은 방사능 물질들로부터? 아니면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나 나무를 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제가 본 것은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 눈앞에서 이 전쟁의 문화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체르노빌 사태 이전에 참상의 척도가 된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고, 전쟁 영웅들의 역사였으니까요. 체르노빌지대에도 전쟁의 모든 특징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군인들, 난민들... 피난행렬... 신문에 실린 체르노빌 관련 기사들도 온통 전쟁용어로 뒤덮였습니다. 원자, 폭발, 영웅들... 분명 익숙한 단어들이었지만, 우리가 처한 그 공간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시간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즉시 깨닫지 못했습니다.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일 뿐 아니라 재난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체르노빌지대에서 제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은, 학자이든, 장군이든, 오염물질제거반 대원이든, 시골 노파든 할 것 없이 모두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공포영화에도 이런 것은 없었어요.” 인간의 기억 속에 아직 이런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들려준 여러 이야기 중, 당시 사람들이 저녁이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발전소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타오르던 불빛은 일반적인 화재의 불빛이 아니었고, 검붉은 빛이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더욱 그랬다고 하더군요. 마법을 거는 듯 아주 아름다운 빛이었다고 했습니다. 프리퍄치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2km 떨어져있고,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자리한 우크라이나의 도시.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역주).
의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발코니로 나와 그 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얘들아, 봐! 그리고 기억해두어라!” 그 죽음이 너무도 낯선 것이라 그것에 매혹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런 관객들 중에는 엔지니어도 있고, 물리 선생도 있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체르노빌지대는 잊을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떠나는 즉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비밀이 마법을 건 것이었지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어떤 것이 우리 위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정원이 꽃으로 뒤덮였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봄꽃들이 꽃잎을 피워냈고, 마을 뒤편에 자리한 강은 평화롭게 흘러갔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친숙한 세상. 처음에는 모든 것이 예전처럼 제자리에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똑같은 땅, 똑같은 꽃, 똑같은 물, 똑같은 구름. 모양도, 색깔도, 냄새도 모두 예전과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도처에 공포와 알 수 없는 일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목동들이 암소 떼를 몰고 물가로 가 물을 먹이려는데, 암소 떼가 뒷걸음질 치며 물마시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늙은 양봉업자의 말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이레 후에 벌들은 벌집을 떠났습니다. 어부들도 지렁이들이 땅 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려 낚시 미끼로 쓸 지렁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인간이 모르는 것을 벌들은 알았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계속해서 일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5월 집회에 나갔습니다. 젊은 부모들은 모자도 쓰지 않은 꼬맹이들을 어깨 위에 얹고 나와 노점 매대 위에 아무것도 덮지 않고 펼쳐 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습니다. 소년들은 축구를 했습니다... 죽음이 도처에 숨어있었지만, 그 죽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죽음이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많은 지식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핵폭탄이 터졌다면 우리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민방위 교육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으니까요. 모두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관해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무기로 사용되는 핵은 두려워했지만, 일상 속의 핵은 인간의 친구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엄청난 선전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신문들은 소련의 원자력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이기에 붉은 광장, 크렘린 옆에 세울 수도 있다고 떠들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한 시골에서 낫과 삽을 든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이건 다 당신들 잘못입니다!”
군용 핵과 민간용 핵은 똑같은 것이고, 그들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즉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체르노빌 이전의 인간은 천천히 체르노빌의 인간으로 변화해갔습니다. 새로운 감정은 새로운 단어를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이 없었습니다.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했던 침묵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하늘과 땅에서 기계들이 굉음을 낼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기관 ? 눈, 귀, 손가락, 코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방사능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맛을 볼 수도 없었으니까요. 육체를 지닌 것도, 어떤 형상을 갖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평생 전쟁을 해왔고, 전쟁 준비를 해왔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형태의 적이 등장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 예전에 친숙하고 가까웠던 주변 세상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대피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영원히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기의 집과 묘지를 두고 떠났습니다. “연기도 안 나고, 불도 없는데 떠나야한대요. 도대체 왜 떠나야하는 거유?” 시골 할머니가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전쟁시절도 기억하는데, 여기는 새들도 날아다니고 쥐들도 사는데... 떠나야하네요. 왜 그런 거유? 이게 전쟁인 거유?” 그녀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범부가 포스트체르노빌 세상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을 공식화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전쟁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이것. 하지만 그것은 전쟁이었습니다. 미래로부터 온 전쟁. 미래에 인간이 겪게 될 공포, 우리 벨라루스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먼저 맞닥뜨리게 된 그 공포로부터 생긴 전쟁. 벨라루스 사람들은 자기들을 '블랙박스'라고 부릅니다. 미래를 위한 정보를 기록해 두는 비행기 안의 그 블랙박스 말입니다. 벨라루스 사람들은 이미 다른 곳과는 다른 방식으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갑니다. 벨라루스에 있는 모든 조산소에서 출산에 대한 벨라루스 여인들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 들려줄 것입니다. 다음은 한 산파의 이야기입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 아직 의식이 없을 텐데도, 산모들은 소리를 지르며 아기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아기를 가져다주면 아이 몸을 일 센티 간격으로 더듬어 봅니다. 모든 것이 정상인지 보는 거죠. 팔은 다 있는지, 다리는 다 있는지,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는지.”
대피가 시작되기 전 첫 몇 주간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골 아낙들이 우유가 든 양동이, 계란을 담은 소쿠리를 들고 앞서 가는데 경찰이 그들을 통제합니다. 그들은 경찰만 없으면, 그걸 들고 집으로 도망칠 기세입니다. “이 계란이 뭐가 나쁜데요?” 그들은 경찰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늘 이랬다고요. 우유도 똑같아요. 하얗고, 따뜻하고. 이거 조금 전에 암소 젖을 짠 거라고요.” 체르노빌에서는 모두가 체르노빌 이전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마다 거대한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것은 우유, 계란, 고기, 응고우유, 오이, 토마토를 묻는 무덤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그 구덩이 옆에 서서 성호를 그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결코 뇌리에서 지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병사들은 길과 집과 창고들을 닦아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나 집안에 머물어야 했습니다. 마당에서 놀거나 바로 곁에 있는 숲에 버섯이나 열매를 따러 가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웃음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믿기 힘든 광경은 땅 속에 땅을 묻는 광경이었습니다. 오염된 땅의 표층을 잘라내어 땅 속에 묻기 위해 실어왔습니다. 수백만 마리의 딱정벌레와 거미도 함께 묻혔습니다. 인간은 자신만을 구하고, 자기를 제외하고 이 땅에 살았던 나머지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희생시켰습니다. 숲에서는 항상 죽은 새들을 볼 수 있었고, 발전소 주변의 숲은 붉은 색을 띄며 말라갔습니다. 대피할 때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은 돈과 서류뿐이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와 개, 심지어 사랑하는 앵무새 한 마리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떠났고, 군부대와 사냥꾼들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모든 동물들을 사살했습니다. 애완동물들은 자기 집 마당에서 주인을 기다리다가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신이 나서 다가왔습니다. 한 사냥꾼이 말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때는 꼭 내가 망나니가 된 것 같았어요.”
모두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까지도요. 아이들도 제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아줌마는 작가니까 말해주세요. 이제 새들이 알을 낳고 아기 새가 태어날까요? 나무에 다시 새 잎이 돋아날까요?”, “우리는 내일 대피하는데, 새들한테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누가 말해줘요? 고슴도치랑 토끼한테는 누가 말해요?”
저는 제가 미래를 기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주인공들은 망연자실했고,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늘 그것을 표현할 말이 부족했습니다. 말의 재난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보지요. 한번은 사건이 터진 첫날밤 화재진압에 투입되었다가 순직한 소방관의 아내인 젊은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화재진압에 동원되었던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의 남편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그냥 평범한 셔츠 한 장만 입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불사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러시아식 무질서에는 어떤 자신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얼마 전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치한다는 생각이지요. 그 밤, 화재진압 작전에 동원되어 원자로에 붙은 불을 껐던 모든 소방관들은 치사량의 방사능에 노출되었습니다. 그 날카로운 빛 때문에 생긴 병에 걸리면 인간은 몇 주에 걸쳐 죽어가게 됩니다. 이 소방관 중 한 사람의 아내였던 류드밀라 이그나텐코는 남편을 만나러 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 여자 분의 이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그들은 갓 결혼한 신혼부부였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들에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했어요. 너무너무 사랑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어요.” 그녀를 들여보내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동원할 수 있는 사실과 거짓을 모두 동원해서 병실 안으로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환자의 아내가 들어야 할 평범한 위로 대신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명심하세요. 남편한테 가까이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입 맞추어도 안 됩니다! 쓰다듬는 것도 안 됩니다! 이제 이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물질이에요!” 아마 이런 상황에서는 셰익스피어도 뒤로 물러설 겁니다. 위대한 단테도요. 다가가느냐, 마느냐, 입 맞추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녀는 다가갔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홀로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아기를 잃었습니다. 여자아이였던 그 아기는 태어나서 며칠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남편과 아들, 그러니까 '방사능 오염물질'이 있는 병동 안으로 감히 들어가지 못했던 아내와 어머니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들은 너무나 많이 울었습니다. 병동에 들어간 사람과 들어가지 못한 사람 중 누가 더 옳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세상에서는 사랑도 변했습니다. 죽음도요...
한번은 방사능에 오염된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거주민이 이미 모두 대피한 곳이었는데, 갑자기 시골길을 따라 모래를 파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몇 채의 집에 창문을 막아둔 판자가 떨어져있고, 마당에는 암탉이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낯선 이들을 보고 개가 짖었습니다. 그 중 한 집의 문을 두드려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 어디서 오신 거예요?
놀란 내가 물었습니다.
- 며칠 전에 사람들이 전부 이곳에서 대피해서 지금 여기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창문도 다 막았고요.
- 저는 타지키스탄에서 왔어요. 전쟁을 피해서 왔어요. 우리 파미르족 타지키스탄 사람들이 쿨랴브 타지키스탄 사람들과 전쟁을 하고 있거든요. 모두 타지키스탄 사람들이고, 코란도 하나인데, 쿨랴브 사람들은 파미르 사람들을 죽이고, 파미르 사람들은 쿨랴브 사람들을 죽여요. 밤이고 낮이고 서로 죽이고 있어요. 버스에서 끌어내려서는 총으로 쏘아버려요.
또 한 여자가 다가와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저는 조산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어요. 그날 제가 야간당직이었어요.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있었는데, 난산으로 힘겨워하면서 비명을 질렀어요... 그 때 청소부가 뛰어 들어오더니, “이봐요! 놈들이 왔어요!”하며 소리쳤어요. 그놈들은 무기를 들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요. 그 순간 산모가 드디어 안도하며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기쁨에 겨워서요. 그리고 아기가 울기 시작했지요. 남자아기였을까요, 여자아기였을까요... 들여다보지도 못했어요. 아직 이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아기였어요. 그 악당들은 우리에게 다가왔어요. 저 여자 누구야? 쿨랴브 여자야, 파미르 여자야? 우리는 입을 다물었어요. 의사도 아무 말이 없었고요... 그놈들은 소리쳤어요. “저 여자 누구야?” 그러더니 아기의 다리를 움켜잡았어요. 아기는, 글쎄, 한 십 분간 이 세상에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아기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그 후에 저는 이틀 동안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도망치기로 결심했어요... 방사능은 두렵지 않아요... 사람들이 무서워요.... 총을 든 사람들이 무서워요. 우리는 여기서 살 거예요. 저는 아이가 다섯이에요. 전부 다 데리고 왔어요...
우리 주변에 이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적어 줘요. 적어두고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이런 일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까요.
세계 앞에서 체르노빌은 가상현실이 되었습니다. 평행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체르노빌의 의미는 아직도 다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작가들도 입을 다물고, 철학자들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두 차례의 거대한 재난이 시기적으로 겹쳤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체르노빌 사태 직후 거대한 소비에트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사회주의 대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제국의 잔재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무엇을 믿을지, 그런 문제들이 그들에게는 핵문제보다 더 절실한 문제인 것입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1990년대 러시아의 민주주의자들은 낭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떠나고 나면 자유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유 대신 도스토예프스키가 경고했던 악마들이 들어왔습니다. 평생 수용소에서 살아온 사람이 수용소 정문을 나선다고 바로 자유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유는, 우리가 꿈꾸었지만 아직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 살았고, 지금은 다시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체르노빌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영원히 체르노빌과 살아가야할 테니까요. 인간 수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방사능 입자들은 영원히, 수천 년 동안 남아있을 것입니다. 체르노빌은 우리의 시간관념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간 감각도 변화시켰습니다. 세상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태가 발발하고 사나흘 후에 체르노빌의 방사능진은 이미 아프리카의 상공을 날고 있었습니다. 참 작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앞지른 것입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한편으로 저는 저의 저서들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합창처럼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항상 외로운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원합니다. 여기 체르노빌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그 소리들은 제 기억 속에서, 그리고 제 책들에서 다음과 같이 울립니다…
“우리를 체르노빌로 파병했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무기를 주었어요. 자동소총을 주었지요.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서요... 군사수업 시간에는 서구 특수부대의 침투작전과 그들의 폭파작업에 관한 강의를 들었어요. 하지만 첫날 저녁, 우리는 이미 자동소총을 각자의 천막에 버려두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는 그 총들을 다 실어가 버렸어요... 침투작전 따위는 없었으니까요... 뢴트겐... 퀴리...”
“대피가 시작되었고... 병사들이 도착해서 농가를 덮쳤습니다. 사람들은 피해 다니고 숨어들었어요. 가축들이 울부짖고, 아이들도 울어댔습니다. 전쟁인가?! 그런데 태양은 밝게 빛났습니다... 할머니들은 무릎을 꿇고 농가 앞을 기어 다니며 기도를 올렸어요. 정든 집과 피붙이들의 무덤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남자들은 술을 진창 마시고는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상부에서는 집집마다 다니며 모두를 설득했어요. “살림은 챙기지 마세요. 곧 돌아오게 될 겁니다.” 이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저는 집에 고양이를 가두고 이틀 치 먹이를 주고 왔어요.“
“전에 우리는 직접 버터, 스메타나, 응고우유와 치즈를 만들었어요. 직접 우유를 끓였죠. 엄마가 저한테 만드는 법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어요. “너희들도 나중에 너희 아이들을 가르쳐라. 나도 우리 엄마한테 배웠거든.” 우리는 자작나무와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주스를 마시고, 수액을 채취하러 숲을 돌아 다녔어요. 저는 깍지 속에 든 강낭콩을 좋아했어요. 월귤로는 과실젤리를 만들었죠... 감자, 그러니까 꼭 우리 벨라루스 감자를 먹었죠. 음식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있는 것인 줄 알았어요.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우유는 먹으면 안 된다, 두유도 먹으면 안 된다. 버섯도, 산딸기도 먹을 수 없다. 고기는 세 시간 동안 물에 불려야 한다. 감자를 삶을 때는 삶은 물을 두 번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재난지역 오염물질 제거작업에 동원됐습니다... 우리가 체르노빌지대에서 무엇을 했냐고요? 장례를 치르고... 또 치렀습니다... 숲을 장사 지냈어요... 나무들을 1.5미터 길이로 조각내고 셀로판지에 싸서 묘지에 던져 넣었어요. 밤이면 잠들 수가 없었어요. 눈을 감으면 무언가 검은 것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거렸어요. 꼭 살아있는 것처럼요... 살아있는 지층들이... 딱정벌레랑 거미랑 지렁이들이 있는 그 지층들이... 저는 그 녀석들을 몰랐어요. 이름이 뭔지도 몰랐죠.... 그냥 딱정벌레랑 거미... 개미들이었어요. 작은 놈도 있고 큰 놈도 있고 노란 놈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색이었죠. 저는 이름도 모르면서 그 녀석들을 수십 마리씩, 수백 마리씩, 수천 마리씩 죽였어요. 녀석들의 집을 부수고, 녀석들의 비밀을 산산조각 냈지요. 그렇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제 남편도 재난지역 오염물질 제거 작업에 동원되었어요. 반년 간 남편을 데려가더군요. 돌아오더니 그 즉시 병이 났어요. 무섭게 앓았어요... 원인도 모른 채로요... 그러면서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죠... 내부에 입은 화상이 바깥으로 드러났어요. 입술과 혀와 볼에 작은 상처들이 나타나더니 점점 퍼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끈적끈적한 것이 하얀 막처럼 되면서 층층이 떨어져나갔어요. 얼굴 색... 몸의 색이... 푸른색이다가... 붉은색이다가... 회갈색이다가...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내 것이었어요,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것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폐 조각, 간 조각이 떨어져서 입을 통해 나왔어요. 그 사람은 자기 내장을 삼키고 있었죠... 저는 남편을 정말로 사랑했어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말해볼까요... 손을 붕대로 칭칭 감아 그 사람 입 속으로 쑤셔 넣고 그 사람 안에 있던 그 모든 것을 긁어내곤 했어요...”
“제 딸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요... 태어났을 때... 아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작은 자루였죠. 빈틈없이 사방을 단단히 꿰매놓은 자루 같았어요. 눈을 제외하면 열린 틈이 하나도 없었죠. 병원 진료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여아. 매우 다층적인 증상을 가지고 출생. 선천적 항문 불구, 선천적 질 불구, 선천적 좌측신장 불구...’ 어려운 용어로 말하면 이렇고요, 쉬운 말로 하면 항문도 없고, 질도 없고, 신장도 하나 없다는 거죠...
태어난 지 이틀 째 되던 날 제가 아기를 수술실로 데려갔어요. 그 아이 생애 두 번째 날에요... 그런데 아기가 그 작은 눈을 뜨고는 미소를 짓는 것 같았어요. 저는 아기가 이제 울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여름동안 오염지역에 사는 벨라루스의 아이들이 몸에 축적된 독소를 뺄 수 있도록 해외로 데리고 갔었어요. 거기서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자, 다들 숲과 강으로 가서 놀아. 가서 수영도 하고 햇볕도 쬐렴.’ 아이들이 얼마나 주저하며 물에 들어가는지를 보셨어야 해요... 어떻게 풀밭을 바라보는지도요... 집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었거든요. 그 아이들은 집에서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는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지! 다시 잠수를 하고 모래밭에 누워 있어도 된다니... 꽃으로 화환을 만들어도 된다니. 아이들은 전부 꽃다발을 손에 들고 다녔어요...”
“우리는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삼년쯤 지났을 때요. 한 사람, 두 사람 병에 걸리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미쳐버리고... 누군가는 자살을 했을 때요. 그제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마 오십년에서 백년은 지나야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겠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죠... 영원한 것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고, 생각은 온통 일용할 양식에 관한 거죠.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들이 영원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싶으시죠. 그게 바로 모든 휴머니스트들의 실수에요.”
학자들과의 인터뷰 중
유리 반다제프스키, 교수, 의학박사
- 지금 벨라루스 오염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 지금 자연에서는 생물학적 사슬의 사이클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방사능 물질의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인간의 몸속으로 침투하기 용이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방사능 물질의 일부는 살아있는 신체조직에 매우 유해한 바륨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만일 방사능 세슘이 몸속에서, 예를 들어 뇌 세포 속에서 분해되면 바륨은 거기에 남아서 결국 뇌 세포를 파괴시키고 맙니다. 동일한 일이 심장세포에서도 일어납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연구에 따르면 오염지역은 정화될 수 없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게 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방사능 물질들이 계속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방사능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결국은 중앙신경계와 갑상선 손상, 심장기능파괴, 그 외의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기 아이들의 거의 40%가 갑상선항진증을 앓고 있습니다(이는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에게 더 많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일상적인 초음파 자료만 보아도 4년 사이 갑상선 질환 사례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체르노빌 사태 이후 두 번째 세대인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앞으로도 수십 세대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만 년이 지나면 사람들이 오염된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여기에 트랜스우라늄 방사능물질들이 묻혀 있는데, 그것들이 반쯤 분해되어 사라지는 데 대략 만 사천년에서 이만 천년이 걸립니다.
알렉세이 야코블레프, 러시아학술원 부회원, 환경학자
-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의 유럽 지역만의 문제라는 일종의 신화가 존재합니다. 잘못된 신화입니다. 방사선 핵종에 오염된 국토 면적을 보면, 벨라루스 국토의 22%, 오스트리아의 13%, 우크라이나의 6.3%, 스웨덴과 핀란드의 5%, 러시아 유럽지역의 1.6%가 오염되었습니다. 유럽은 체르노빌 사태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사억 명의 사람이 방사능에 노출되었습니다.
삼십 년이 지났지만 위험 거주 지역에 여전히 오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기 사는 아이들의 수도 팔십만 명에 이릅니다. 최근 들어서는 방사능핵종의 2차 유포가 관찰됩니다. 이는 특히 화재, 토탄화재와 숲에서 발생하는 화재와 관련이 있습니다. 2010년, 체르노빌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체르노빌의 방사능핵종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그 방사능핵종들은 식물, 열매, 버섯, 동물들 속에 농축되고 있습니다.
서유럽의 가장 유명한 슈퍼마켓에서 구매한 오십 병의 잼 중 다섯 병에서 세슘이 검출되었고, 그 중 한 병에서는 허용치를 훨씬 웃도는 위험수준의 세슘이 발견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전염병위생관리국은 매년 모스크바의 시장에서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 과일과 버섯들을 압수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체르노빌을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인류는 원자력발전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일까요? 아니요, 아닙니다. 새로운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허용돼서는 안 됩니다.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원자폭탄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핵무기처럼 위험한 것입니다. 전 세계 어떤 나라의 국민도 그들이 방사능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원자로 하나가 지구의 절반을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세계는 기술발전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기술 재해와 자연재해에 따른 손실의 규모는 세계 총생산의 성장 규모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체르노빌사태에서 교훈을 얻고 우리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살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자연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철학이 필요합니다.
...체르노빌지대로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해가 이미 낮게,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면서 작별인사라도 하듯 숲과 들판을 비추어주었습니다. 우리의 땅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우리는 이 땅을 구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헬기조종사를 방문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는 불타고 있는 원자로의 구멍 속으로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려 넣다가 방사능 낙진을 들이마셨습니다. 사실 그에게 몸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눈뿐이었습니다!... 그분이 저의 방문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마 상상도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기뻐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오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혹시 이해를 못하셔도 기록이라도 남겨두세요. 그러면 나중에 누군가는 이해하지 않겠습니까...“
수년 동안 저는 꾸준히 체르노빌지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듣고 보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통도 정보의 한 형태이고, 우리를 연결시키는 연결 고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번역 안지영
신준봉 기자 shin.juneb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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